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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0-19 09:19
[언론기사] [레디앙] 오일홀릭(1) - 누가 우리를 석유중독자로 만들었는가?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8,660  

저탄소 녹색성장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매섭다. 저탄소 녹색성장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도 없이, 녹색트렌드로 분칠한 광풍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정부는 녹색으로 포장된 비상식적인 거짓 정책을 연일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있다.

때로는 두더지게임처럼 머리를 내밀었다가 숨어 버리기도 한다. 동시에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등 진보진영에 대한 고사 전략을 치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와 정책에 대한 대중의 피로도는 급격히 증가하고, 내용과 무관한 ‘녹색’의 깃발만 나부끼고 있다.

   
  
혼란한 상황일수록 출발로 돌아가 상황을 단순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 아이콘이 된 ‘저탄소 녹색성장’은 저탄소와 녹색, 그리고 성장이라는 세 개념의 조합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한국사회(경제)를 고탄소 회색성장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고, 그렇다면 새로운 비전 제시와 함께 구질서를 해체하기 위한 전략이 함께 고려되는 상식이다. 또한 환경과 조화로운 경제, 즉 녹색경제로의 사회전환을 위한 중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질서(고탄소 회색성장)의 해체에 있어 핵심 키워드는 바로 ‘석유’이고, 석유를 둘러싼 공고한 카르텔 구조의 해체 없는 저탄소 녹색사회로의 전환은 한 마디로 사기이다.

또한 구질서의 해체와 함께 대안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한 ‘정의로운 전환 전략’, 즉 사라질 일자리 문제 등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석유·자동차·도로의 삼각동맹’에 결박된 한국 사회

혹자는 한국사회는 ‘석유, 자동차, 도로’의 삼각 동맹에 결박돼 있다고 주장한다. 정유회사의 지속적인 소비를 증진시키기는 자동차산업의 발전이 필요하고, 동시에 이들 자동차를 수용할 도로의 증설로 이어지는 순환의 삼각동맹 구조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삼각동맹은 다소 단순화시킨 측면이 있지만, 고탄소 회색성장의 구질서를 압축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구질서를 해체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를 위해 석유 중심 사회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서 첫 단추를 맞추는 것에도 동의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문명의 젖줄’로 칭송받기도 하고, 때로는 ‘악마의 눈물’로 표현되는 석유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실체를 드러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지하 동굴에 갇혀 석유자본의 그림자만 보고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동굴 밖으로 나와 진실을 직시는 것이 온전한 저탄소 녹색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출발이다.

유독 에너지와 관련한 단위나 개념은 매우 혼란스럽다. 몇 가지 기초적인 개념과 유래를 정리해 보면, 먼저 석유(石油)의 유래는 기원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말 그대로 돌 틈에서 나온 기름이다. 당시 석유는 정제과정 없이 태워서 초롱불로 쓰거나, 포장 도료로 쓰였다. 최근 석유는 정제 전후로 원유와 석유제품으로 구분하고, 이를 통칭해서 석유라고 한다. 석유제품은 정제를 거쳐 휘발유, 경유, 등유, 중유, 납사, 아스팔트, 항공유 등으로 구분된다.

한편,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배럴은 18~19세기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본격적으로 석유가 개발될 당시 석유를 운반하던 통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를 리터로 환산하면 약 158.9리터이다. 겨울철 군밤장수들이 요긴하게 쓰는 드럼통보다 조금 적은 양이다.

한국보다 석유 많이 쓰는 곳은 6개 국가에 불과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의 석유를 소비하고 있을까. 지난 2007년의 원유수입량은 8.7억 배럴인데, 이를 리터로 환산하면 약 1,382억 리터, 즉 200리터 드럼통 69억 개가 된다. 이는 우리나라 하루 물소비량의 5.3배이고, 코엑스 수족관 6만 개 이상을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또한 이를 소주병에 담으면 3,908억병에 이르고, 눕혀 연결하면 지구를 2,097번 돌 수 있고, 서울과 부산을 93,359회 왕복할 수 있으며, 지구와 달을 111회 왕복할 수 있는 규모이다. ‘물 쓰듯 한다’는 말을 이제는 ‘석유 쓰듯 한다’고 고쳐야 할 정도로, 분명 우리는 석유중독에 걸려 있다.

   
  
한국은 하루 237만 배럴(376,751.9kl)의 석유를 소비하고 있는 세계 7위의 석유 소비 국가이다.

   
  ※ 출처 :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08 Edition

한편, 지난 2007년의 우리나라 원유수입액은 600억$에 이르렀는데, 이는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390억$), 자동차(373억$), 무선통신기(303억$), 선박(277억$), 철강(231억$)을 훨씬 상회하는 금액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는 석유중독을 양산하면서, 이권을 챙기는 카르텔 구조가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으며, 국민들 대다수는 ‘중독’을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 대다수는 생경한 전문 용어, 각종 단위 등으로 에너지 문제가 갖는 복합적인 측면을 보기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정유업계-전력회사-관료-정치권-언론-학계 등 이른바 ‘에너지 자본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국회의원인 헤르만 셰어는 그의 저서 『에너지주권』에서 에너지 전환의 10대 철칙 중 여섯 번째로 “에너지업계 내에 존재하는 카르텔을 실질적으로 해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국제 유가가 치솟아도 망하지 않는 정유사들

고유가 시대를 맞아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유가에 서민들의 삶이 흔들리고 있는데, 거꾸로 정유사의 이익은 몇 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석유 제품의 원료인 원유가격이 몇 년 사이 4~5배나 올랐으나, 정유사는 왜 망하지 않는지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안 된다. 아래 표와 같이 2007년 대비 2008년의 정유 4사의 매출액은 66.7조 원에서 124.9조 원으로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매출 총이익은 5.5조 원에서 7.6조 원으로 증가했다.

   
  
2003년부터 2006년 사이 국제 유가는 2.3배 증가했고, 정유사들의 석유제품 생산량이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정유사들의 당기순이익은 1조 1천550억 원에서 2조 8천650억 원으로 약 2.5배 증가했다.

정유사들의 당기순이익 규모가 수조 원에 이른다. 이런 기형적인 현상의 뿌리에는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정유사의 담합과 폭리구조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위기의 핵심은 에너지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과정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원유 등 화석에너지는 국제적인 전쟁과 분쟁, 원주민의 기본권 유린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키고, 특히 한국으로선 기후변화협약 가입을 앞둔 상황에서 경제적 충격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고 있는 에너지 재벌의 무한 이윤추구 과정에서 석유고갈과 고유가의 부담이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석유자본의 좋은 친구들

한국 사회에서 석유자본을 모니터하고, 그들의 이해관계의 대척점에 있는 조직된 그룹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먼저 정치권에서 석유자본을 견제하는 흐름을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대 지난 2005년 최철국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외자원개발사업법안’이 가결됨으로써, 이전까지 해외자원개발의 지원을 받지 못하던 SK가 수혜를 입게 됐다.

정부도 석유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지난 2008년 영세한 바이오디젤 사장이 자신의 자동차에 바이오디젤을 넣어 사용하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는 석유사업법에 항거하기 위해, 지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고발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약식재판을 거부하고 정식 재판을 통해 승소하였는데, 지경부는 바로 석유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이를 다시 불법화시켰다. 자신의 자동차에 석유를 대체하는 바이오디젤을 주유하는 것을 불법화하는 것은 정유사의 시장을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천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SK에너지의 2008년 광고·선전비는 1,937억 원에 달했다. TV를 시청하다가 석유자본의 광고를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석유자본의 이미지 광고가 우리를 끊임없이 속박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데올로기 훈육을 받고 있다.

더구나 광고나 협찬을 통해 언론의 논조에 개입할 개연성이 매우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자주개발이라는 다분히 민족주의 색채가 두드러지는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정책의 그늘(환경파괴와 인권유린)을 드러내기 보다는, 한국의 정유사가 해외에서 얼마나 석유를 확보했으며, 그것이 주는 경제적 수익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홍보하기에 바쁘다.

시민사회와 학계 역시 석유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와 석유자본이 발주하고 있는 각종 정책연구용역은 지식사회를 자신들의 우군으로 포섭하고 있으며, 소위 사회공헌이라는 미명하에 자본을 통해 에너지 관련 NGO의 재정구조를 취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석유 중심의 사회구조를 지속가능한 착한 에너지 체계로 정의롭게 전환하기 위한 노력은 장밋빛 구상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석유중심의 현 질서를 지탱하고, 재생산시키는 이해관계의 그물망을 해체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하며, 그 출발은 석유중심의 현 질서를 냉정하게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2009년 07월 28일 (화) 10:14:28 이강준 / 에너지정치센터 기획실장 redian@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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