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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18 14:33
[언론기사] [탈핵신문] 탈핵희망버스, 이제 지역‘만’의 싸움은 없다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0,557  

탈핵희망버스, 이제 지역‘만’의 싸움은 없다




@이유진

어느새 다섯 번째인 탈핵희망버스가 ‘다시’ 밀양을 찾았다. 전력수급을 위해 밤을 새더라도 52기 송전탑 공사를 마무리하겠다며 대국민 호소문까지 발표하고 나선 한국전력(이하 한전) 때문이다. 대안을 제시해도 듣지 않고, 보상금으로 끊임없이 주민들을 편가르기 해온 한전은 이제 하나라도 뚫리면 주민들이 무너질 것이라는 확신을 얻은 듯했다. 반면 밀양의 주민들은 한전의 폭력과 더위, 추위에 맞서 그저 몸뚱이 하나로 너무 오래 버텨오셨다. 하루나 이틀, 잘해야 며칠은 버틴다 해도 어르신들만으로는 안 될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전이 공사 재개를 예고한 20일 전날에는 경찰 기동대 500여명이 배치되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탈핵희망버스를 기획해 온 몇몇 활동가들이 긴급하게 모였다. 사람이 얼마나 모일지 모르지만 하루라도 빨리 버스 한 대라도 가자는 데 모두 동의했다. 24-25일 밀양행 ‘긴급 탈핵희망버스’를 알리는 파발을 띄운 것이 21일, 알릴 수 있는 기간은 불과 3~4일이었다. 밀양에서는 시시각각 부상 소식이 들려왔고, 심지어 사람이 몸을 묶었는데도 헬기를 띄우는 한전의 대담한 행태가 전해졌다. 거의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소식과 함께 탈핵희망버스 참가를 호소하는 메시지를 퍼뜨렸다. 곧 문의 전화와 문자가 쏟아졌다. 연락은 출발 직전까지 끊이지 않아 버스는 한 대에서 두 대로 늘어났고 이마저도 불안해 미니버스와 승합차도 더 구했다. 숙소 때문에 120명 이상은 정말 곤란하다는 밀양의 전언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잠은 필요 없다며 모여들었다.

그렇게 수도권, 부산, 경남북, 전남북, 강원 등 전국에서 모인 270여명이 늦게는 새벽 2시가 다 돼 숙소에 도착했지만 3시부터 시작된 일정에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4개 면 7개 공사 현장으로 흩어진 사람들은 그렇게 12시간을 지켰다. 준비된 행사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참가자들은 자발적으로 주민들과 어울리는 즉석 공연이나 집회를 열고, 핵발전의 문제와 탈핵에 대한 현장 강의에, 어르신들의 초상화를 그려드리는 모습도 보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과 젊은이들의 활기에 주민들은 비로소 웃음을 찾았다. 한편 한전은 아침 7시 무렵부터 모든 공사 현장에 10~30명의 직원들을 배치하고 빈틈이 생기기를 노렸지만 결국은 공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탈핵희망버스는 밀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왜냐하면 탄생 자체가 밀양의 송전탑 반대 투쟁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작년 3월 17일, 야심차게도 ‘제1차’를 내걸고 탈핵희망버스가 출발할 때만 해도 과연 현안 지역을 벗어난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참가할 수 있을지 기존의 시민‧환경단체들마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제1차 탈핵희망버스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400여명의 시민을 비롯해 밀양 주민, 시민까지 1,500여명이 참가하는 ‘희망’의 축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 희망의 기억은 밀양뿐만 아니라 탈핵운동 전체에 메시지를 남겼다.

1차 버스가 내걸었던 '죽음의 송전탑 자리에 생명의 나무를' 심자는 슬로건처럼, 분신사태로 인한 절박함을 동력으로 버텨왔던 밀양의 투쟁은 어린이들의 웃음과 청년들의 노래 그리고 생명의 나무가 함께 하는 희망의 투쟁으로 바뀌었다. 또 새로운 탈핵운동의 주체가 만들어졌다. 한진으로 향한 희망버스가 그랬듯이 탈핵희망버스도 단체 중심의 조직적 참가가 아니라 문제의식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참여한 경우가 절대 다수였다. 한 번 참가한 탑승객은 대부분 단골 탑승객이 되었고, 역으로 자신이 속한 단체를 별도의 연대버스로 조직하는 등 운동을 확장해 나갔다.

‘탈핵’희망버스가 ‘밀양’을 출발점으로 삼은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만난 적 없던 송전탑 투쟁과 반핵 운동이 이제 우리나라 전반적인 핵발전 시스템의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송전탑, 핵발전소, 핵폐기장은 모두 현안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중앙집중식의 에너지체제라는 ‘전국적’ 의제와 맞닿아 있고, 따라서 ‘님비’가 아니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대도시와 에너지를 생산하거나 전달하기 위해 희생되는 지방이라는 불평등한 구조에 저항하는 ‘정의’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며칠 전 한전과 주민들은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하고 대안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이 40일의 협의기간 동안 공사는 중단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밀양을 계속 찾을 것이다. 쇠약해진 어르신들의 농사일을 돕고자 농활이 추진 중이고, 어제는 탈핵희망버스에 탑승했던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협의기간 동안 밀양의 인권침해 사례들을 모아 사회적으로 알리는 조사단을 구성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제, 지역만의 싸움은 없다.


/이보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 이 기사는 탈핵신문 9호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nonukesnews.kr/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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