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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0-05-28 16:55
무심코 버린 쓰레기는 저절로 재활용되지 않는다 / 김성욱 경기도에너지센터 수석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5,741  
지금 배출하는 폐기물의 상태와 양이 결코 지속가능한 수준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양도 줄여야 하고 재활용도 훨씬 엄격하게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폐기물 재활용 대의를 누가 반대할 것인가? 하지만 대의명분이 희생을 결코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제도의 뒷받침이 없는 희생은 전가되고 전가되다가 이것을 피할 수 없는 가장 약자에게 부당하게 떨어진다. 제도를 만드는 이들이 가장 꼼꼼하게 살펴야 할 지점이 여기에 있다. 대의를 지키고자 한다면 더더욱 부당한 희생이 동반되지 않는 정밀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희생하지 않게, 대가는 정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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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버린 쓰레기는 저절로 재활용되지 않는다
[초록發光] 희생하지 않게, 대가는 정당하게

장면 1. <임계장 이야기>에서는 돈을 내야 하는 대형 쓰레기들을 그냥 버리고, 재활용품 박스 안에 일반 쓰레기를 섞어 몰래 버리는 아파트 사람들의 모습과 이것을 처리하느라 애를 쓰는 경비원의 모습이 묘사된다. 현실에서 쓰레기 처리는 경비원의 몫으로 떨어지지만, 원칙적으로 분리배출과 수거는 주민과 재활용품 수거업체가 해야 할 일이다.

장면 2. 공공기관에서는 일회용품 감량을 위해 다회용 컵과 식기를 쓴다. 그런데 이 컵과 식기는 누가 세척할까? 국장님과 그를 방문한 내방객, 팀장님과의 면담, 협의체 회의 등을 통해서 발생한 컵은 국장님이, 팀장님이, 협의체 구성원들이 설거지할까? 식당에서도 몇 년 전부터 다회용 물병과 컵, 수저를 사용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 식당에서 가장 세균이 많은 부분은 다회용 물병의 뚜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나 역시 유명한 맛집의 물병 뚜껑에, 컵에 물때가 낀 것을 종종 본다.

장면 3.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온라인 수업으로 아이들은 내내 집에 머물렀다. 7시 40분이면 집을 나서야 하는 워킹맘에게 출근 전 시간은 아이의 아침과 점심식사를 동시에 준비하는 전쟁 같은 때다. 엄마들에게 새벽배송과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식 대체식품)은 구세주 같은 존재다. 한두 가지 HMR이면 과일과 채소, 밑반찬을 더해 겨우 두 끼를 챙길 여력이 된다. 하지만 남은 숙제, 이들이 담겨 온 박스, 트레이, 비닐은 꺼내자마자 폐기물이 된다. 시간이 없어 HMR을 선택한 엄마들은 필연적으로 '쓰레기 만들어 지구를 더럽히는 죄인'이 되고, 없는 시간을 다시 쪼개어 기름기가 없어질 때까지 일회용기를 씻고, 비닐을 헹구고, 스티커를 떼고, 뚜껑을 따로 버린다. 그렇게 처리하지도 못하는 일반 쓰레기도 수북이 쌓인다.

세 가지 장면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폐기물이 재활용 자원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환경정책의 대 원칙은 '오염 행위에 대한 책임은 원인자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원인자는 폐기물을 원래 상태로 돌리기 위해 직접 세척하여 재활용하든, 돈을 주고 사람을 사든, 세금을 내어 국가가 처리하든 노력을 해야 한다. 원인자가 직접 노력하지 않거나 노력에 대한 대가 지불이 정당하지 않으면, 이는 전가되어 누군가의 희생이 되어버린다.

공동주택 세대 내에서 생긴 폐기물을 재활용 가능한 자원 상태로 버리지 않으면 경비원이 희생하게 된다. 이것이 희생인 이유는, 각 세대는 폐기물을 적절하게 처리하여 분리 배출함으로써 쓰레기 처리비용(=종량제 봉투값)을 면제받고, 재활용품 수거업체는 폐기물을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어 이익을 얻으므로 폐기물 처리의 책임은 세대와 재활용품 수거업체에 있기 때문이다. 세대가 폐기물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는 경비원에게 전가되고, 이들이 전가를 거부하여 엉망이 된 쓰레기들이 그대로 배출되면 재활용품 수거업체는 이를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깨끗한 아파트 환경은 결국 전가된 폐기물의 처리를 맡은 경비원의 희생에 기반했다.

정부 정책으로 다회용 식기를 사용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장면 2에서 국장님, 팀장님, 손님들의 컵을 씻는 것은 대개 조직에서 가장 적은 급여를 받는 사람일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모른 척하거나 눈치 보기를 하며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적은 급여를 받는 소위 '막내'들은 업무에 설거지를 포함하여 계약하고 입사하지 않았음에도 설거지를 떠맡는다. 그러니 이들의 설거지는 희생이 된다. 그들이 희생하지 않으면 우리는 식당에서 물때 낀 물병 뚜껑이 방치되듯이 얼룩이 그대로 남은 컵 속에 든 물을 마셔야 할 것이다.

희생은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식구들이 미루고 미룬 일들은 모두 엄마의 몫이다. 엄마의 자원도 무한대는 아니기에 새벽배송으로 HMR을 준비하고, 돈으로 시간을 산다. 그렇게 엄마는 폐기물을 양산해내며 '쓰레기 만드는 주범'이 되어 가족들의 식사와 복지를 위해 대속한다. HMR을 구매하고 일회용품을 대량으로 배출하며 비닐장갑과 키친타월을 쓰는 '무절제한' 소비자로 질타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이들에게 무슨 대안이 있을까? 엄마들도 모두 알고 있다. 이 폐기물이 지구에 부담이 되고,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쓰레기 산을 만들고 자식들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걸. 몰라서 쓰레기 만드는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아무도 쓰레기를 올바르게 처리하지 않고 노력도 희생도 하려 하지 않으며, 수거 처리업체는 재활용자원이 아닌 쓰레기를 받은 까닭에 수거와 처리를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폐기물의 품질이 자원이 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시장에서 유통되지 못할 것이고, 수거 처리 업체는 손해를 보고 희생할 수 없으니 어딘가에 무단으로 쌓아둘 것이다. 전국 곳곳에 땅 주인도 모르는 쓰레기산과 쓰레기 창고가 생겨나고 필리핀으로 몰래 쓰레기를 수출하다 거부당해 세계적 망신을 당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결과다. 이 때 우선 희생되는 것은 산과 생태계지만, 최종 희생자는 지구의 미래생활자일 것이다. 이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다음의 두 가지 장면은 우리에게 어떤 숙제를 준다.

장면 4. 싱가포르의 일반 국민은 쓰레기를 분리수거하지 않는다. 가게에서 제품을 포장했던 비닐봉투에 이런저런 쓰레기들을 모두 모아 대강 묶은 후 공동 쓰레기장으로 연결되는 통로에 그대로 투입하면 끝이다. 이 폐기물들이 저절로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 이하의 일거리로 삶을 영위하는 이민자들이 이 봉투를 일일이 열고 폐기물을 분류·세척해서 재활용 자원으로 수출한다.

장면 5. 20여 년 전 TV 다큐멘터리에서 독일의 재활용 정책과 시민의 협조에 대한 내용이 방송된 적이 있다.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선명하게 남아있는 인터뷰 내용은 독일 중년 여성의 작은 불평이었다. 플라스틱 병의 포장을 떼어내면서 그녀는 "독일의 엄격한 분리수거 정책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많은 시간을 스티커를 떼고 병을 씻는데 보낸다"고 했다. 독일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폐기물 분리수거 정책을 갖고 있다. 덕분에 독일의 재활용 폐기물은 자원으로서의 인기가 높다.

국민을 차등할 수 있는 사회라면 싱가포르처럼 내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있다. 어쩌면 세금이, 또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는 국민을 차등할 수 없으니 누구나 불평하며 독일처럼 기름진 일회용기를 설거지하고, 비닐 코팅된 종이를 저주하며 PET 박스의 상품 안내 종이 스티커를 벗겨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폐기물 처리를 위해 폐기물 배출자들이 훨씬 많은 세금을 지불하여 폐기물 수거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양질의 재활용 자원을 얻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이 때 세금의 크기는 자원의 경제성 확보와는 별개로, 폐기물 처리의 고단한 수거, 선별, 세척, 이물질 제거 등을 인력으로 정당하게 해결할 수준은 되어야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지금 배출하는 폐기물의 상태와 양이 결코 지속가능한 수준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양도 줄여야 하고 재활용도 훨씬 엄격하게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폐기물 재활용 대의를 누가 반대할 것인가?

하지만 대의명분이 희생을 결코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제도의 뒷받침이 없는 희생은 전가되고 전가되다가 이것을 피할 수 없는 가장 약자에게 부당하게 떨어진다. 이들의 노력에 정당한 대가가 없다면, 종국에 원인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모두 부당한 희생이다.

희생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원인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좋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니 참으라는 말은 허울 좋은 갑질에 가깝고, 약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시스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제도를 만드는 이들이 가장 꼼꼼하게 살펴야 할 지점이 여기에 있다. 대의를 지키고자 한다면 더더욱 부당한 희생이 동반되지 않는 정밀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희생하지 않게, 대가는 정당하게.'

/ 김성욱 경기도에너지센터 수석연구원

* 초록발광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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